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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자야, 그리고 법정

가상공간0202 2010. 3. 13. 23:16

백석, 자야, 그리고 법정스님

 

오늘 법정스님이 입적했다.

 

삶과 죽음은 이미 우리네 소관이 아니지만

마음에 소중한 분들이 한 분씩 떠나간다는 사실이 한없이 쓸쓸했다.

백석, 자야. 법정스님, 길상사가 연결될 수 있는 어휘라는 것에 또다시 쓸쓸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백석의 첫사랑은 통영의 ‘난’이다.

‘난’과의 사랑에 실패한 백석이 서울로 돌아와서 만난 여인이 바로 ‘자야’다.

1940년 만주로 떠났으니 약 3년 정도의 사랑이 백석과 자야가 사랑한 시간이다.

백석은 함흥 영생여고 교사들 회식 장소에서 기생이었던 진향(자야)을 만났다.

진향의 미모와 총명함에 반한 그는 바로 옆자리에 앉히고 손을 꼭 잡고 속삭였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함흥에서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사랑, 이별과 해후의 반복,

사랑을 위한 현실 외적인 도피.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그는 퇴근하면 으레 진향의 하숙집으로 가 밤을 지새곤 했다.

그는 진향이 사들고 온 《당시선집》을 뒤적이다가

이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그는 자야를 따라 함흥에서 서울로 올라와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렸다.

혼례만 치르지 않았을 뿐 부부와 똑같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뜨거웠지만 시대 환경은 어렵고 차가웠다.

고향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그를 자야에게서 떼어놓을 심사로 결혼을 시키기로 했다.

그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가 정한 여자와 혼인을 하지만

손목 한번 잡아보지 않고 도망쳐 나와 자야 품으로 돌아왔다.

이런 식으로 강제 결혼을 하고 다시 도망치기를 세 차례.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그는 괴로워하고 갈등했다.

그는 봉건적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야에게 만주로 같이 도피 하자고 설득하지만 자야는 이를 거절했다.

그는 만주로 떠나는데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잊혀져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

우리 문학사에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은 인사가 되고 만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바로 그녀와의 사랑을 노래한 시다.

지금 눈이 내리는 것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그게 무슨 소용있어’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 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이생진,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백석의 여인1-자야의 사랑)> 전문)

 

 

대원각 소유주였던 자야(본명 김영한)는

16살 때 조선권번에서 궁중아악과 가무를 가르친 금하 하규일의 문하에 들어가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됐다.

백석이 떠나고 한국전쟁 이후인 1953년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해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내 사랑 백석’ 등의 책을 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지금의 길상사 자리를 사들여 운영하던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은

제3공화국 시절 대형 요정 대원각이 됐다.

자야와 법정스님의 인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김씨는

1987년 미국에 체류할 당시 설법 차 로스앤젤레스에 들른 법정스님을 만나

대원각 7천여평(당시 시가 1천억원)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줄곧 시주를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다가

1995년 마침내 청을 받아들여 법정스님의 출가본사인 송광사 말사로

조계종에 ‘대법사’를 등록한다.

이후 1997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꿔

12월14일 창건법회를 갖는다.

길상사 창건법회 날 김영한씨는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당시 그는 수천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마음이 마음으로 달려온다.

욕망이 지배하는 2010년 현재,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할 대화이다.

김씨는 1999년 11월14일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목욕재계 후 절에 와서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고,

유골은 49재 후 유언대로 길상헌 뒤쪽 언덕에 뿌려졌다.

길상사는 유골이 뿌려진 자리에 조그만 돌로 소박한 공덕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10월7일 기재를 지낸다.

길상사의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는

‘맑고 향기롭게 길상화 장학금’을 만들어

매년 고교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법정스님은 오랜 시간 길상사에서 법문을 했고

2010년 3월 11일, 법정스님이 길상사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입적하셨다.

(서울신문 변형 인용)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법정스님, <무소유> 부분)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 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법정스님 법문 <일기일회> 부분)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무소유’ 부분)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

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산방한담’ 부분)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

다.(‘물소리 바람소리’ 부분)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버리고

떠나기’ 부분)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

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홀로 사는 즐거움’ 부분)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

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산에는 꽃이 피네’ 부분)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

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산에는 꽃이 피네’ 부분)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오두막 편지’ 부분)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봄여름가을겨울’ 부분)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합니다.(1997년12월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부분)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

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아름다운 마무리’ 부분)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

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아름다운 마무리’ 부분)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리는 당신네들의 신들을

난 당최 이해 할 수가 없다...

차라리 남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들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