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抱川) 육지만 따져야 진짜배꼽 거리마다 선전물 요란
충주(忠州) 忠=中心 “역사적 중심” 신라 7층塔이 ‘중앙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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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와 마라도까지 포함해 지도에서 한가운데 점을 찍으면 양구가 나옵니다.”(강원도 양구)
“상식적으로 생각해야죠. 양구는 동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나요. 한반도로만 따져보면 포천이 통일 한국의 정중앙(正中央)입니다.”(경기도 포천)
“국토 중앙은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정해야죠. 충주(忠州)라는 이름 자체가 ‘중심(中心) 고을’이라는 뜻입니다.”(충북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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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한반도 배꼽 논쟁에 불을 붙인 쪽은 양구. 양구는 2002년부터 강원대와 함께 국토 정중앙점 찾기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양구군은 이를 위해 ‘섬’을 포함해 한반도의 동서남북 4극점을 찾고 이를 연결해 사각형을 그렸다. 이 사각형 안의 위도와 경도가 만나는 곳이 국토의 정중앙이라는 것이다. 4극점은 경북 울릉군 독도(東), 평북 용천군 비단섬(西), 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南), 함북 온성군 유포면(北) 등이다. 양구군은 첨단 인공위성 추적 장비까지 동원해 경도 128도 2분, 위도 38도 3분 지점인 양구군 남면 도촌리가 국토 정중앙이라고 발표했다. 도촌리는 ‘한반도 배꼽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국토 정중앙을 알리는 표지석까지 만들었다. 배꼽마을에는 2008년까지 112억원이 투자되는 ‘국토 정중앙 테마공원’이 조성된다.
하지만 포천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포천시도 양구군과 같은 방식이지만 섬을 제외한 육지만을 기준으로 4극점(極點)을 삼았다. 포천시는 “국토 정중앙 측정에 섬이 포함되면 하와이가 있는 미국은 태평양 바다에 국토 정중앙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포천 거리 곳곳에는 ‘통일 조국의 중심 포천’이라는 간판이 있다. 포천시는 위도 38도 1분 선과 경도 127도 26분 선이 만나는 영중면 성동리가 한반도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포천시가 정한 4극점은 함북 경흥군 노서면(東), 평북 용천군 용천면(西), 전남 해남군 송지면(南), 함북 온성군 유포면(北)이다. 그러나 4극점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선을 그으면 포천시의 주장과 달리 약간 북쪽에 점이 찍힌다. 포천시는 “상식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 포천은 국토의 중심에 가장 가깝고, 예전부터 우리도 국토중심 사업을 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우선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충주시는 지형이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충주시의 관계자는 “한반도의 중심을 산수문제 풀듯이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역사 책이나 지명, 유물을 보면 충주가 국토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충주는 역사적인 유물을 동원한다. 가금면 탑평리에 자리잡고 있는 중원탑평리 7층석탑(국보 6호)으로, 충주시민들은 이 탑을 ‘중앙탑’이라 부른다. “통일신라시대쯤 됐지요. 당시 왕이 국토의 정중앙을 표시하려고 보폭이 같은 사람을 남과 북에서 동시에 출발시켰더니 현재 중앙탑 자리에서 만났다는 거예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충주시 박물관의 길경택씨가 풀어놓는 중앙탑에 얽힌 전설이다. 충주는 통일신라시대의 국경선(대동강~원산만)을 기준으로 하면 실제 국토 중앙에 가깝다. 게다가 충주의 옛 지명이 국토의 중앙을 의미하는 국원(國原), 중원(中原), 중주(中州)로 불렸다.
현재 한반도 배꼽과 관련해서는 양구군이 가장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과학적으로도 엄밀성을 갖추었다. 그러나 양구의 주장을 공인해 줄 수 있는 국토지리정보원은 “국토 정중앙점을 산정하는 일반화된 원칙과 기준이 없기 때문에 실증작업이 불가능하다”며 답변을 꺼리고 있다. 논쟁에 끼지 않고 싶다는 뜻이다.